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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농장

last modified: 2015-07-19 15:26:31 Contributors

Contents

1. 설명
2. 각지의 집단농장
3. 실체
4. 말로

1. 설명

Collective Farm

농지의 소유권을 공용으로 놓고, 공동 경영을 통해 얻은 수익을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는 시스템을 가진 농장. 주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이루어졌다.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언뜻 보면 형편이 어려운 소작농을 구제해 줄 것으로 보이는 제도지만... 현실은 시궁창. 지주가 당으로 바뀌기만 했을 뿐, 농노제와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였다.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생산수단을 사회적으로 소유(=정부가 소유=당이 소유)해야 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그 이론은 농업에도 적용되며, 그 실현으로서 토지의 소유권을 정부와 당이 독점하고 농민들을 철저한 예속 상태에 놓는 집단농장이라는 악습이 발생했다.

2. 각지의 집단농장

소련에서는 콜호스(집단농장), 소프호스(국영농장), 중공에서는 인민공사(人民公社)라고 불렸다.

단,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있지만 않았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이러한 집단농장이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키부츠가 있다.(다만 이쪽은 자발적으로 시행한거긴 한다. 그러나 그 자발적인 키부츠도 1990년대 들어서 하는 사람이 나날이 줄어서 외국 노동자가 외국인 자원봉사자로 버티는 수준이다.

물론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 농업 집단화가 이루워진건 아니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폴란드가 있다. 본래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전반에 걸쳐서 농업집단화가 이루워졌지만 1956년에 고무우카가 집권하면서 농업 집산화가 중단되어버렸다.

고대로 가면 주나라에서 행해졌다는 정전제를 집단농장과 유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3. 실체

권력을 잡은 이후, 일차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부재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실제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지분배 사업을 펼쳤다. 자기 땅을 가지게 된 농민들은 열렬하게 환영하였고, 많은 자영농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곧 공산당은 공산주의적 이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삽질을 했다.

이렇게 형성된 자영농들을 하나로 묶어서 협동농장을 조직하고, 농지의 소유권과 자율적인 경작권을 박탈한다. 모든 농민을 국가와 당 소유의 소작농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공산당들은 이러한 조치가 "자율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나 당의 조치에 반항하는 자는 지주로 몰아서 처형하고 혹독한 형벌을 가하기 때문에 강제나 다를 바가 없다.

협동농장에 묶인 농민들은 오직 당의 지도에 따라서 타율적으로 농업을 해야 하며, 농업 이외의 다른 산업에 종사할 직업 선택의 자유도 박탈당한다. 농작물의 처분권도 박탈당하며 모든 생산물은 '분배'를 명목으로 몰수된다.

결국 집단농장이란, 자율과 지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농노 제도로의 회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뻘짓이였냐면, 문화대혁명 종결 후인 1978년에 중국 공산당은 농부들이 텃밭에서 생산한 농축산물을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허가했는데, 전체 경작지 면적의 3% 밖에 안되는 텃밭에서 생산된 감자, 채소, 쇠고기, 우유가 전체 생산량의 61%, 29%, 34%, 76% 에 달했다. 소련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는데 일반인들에게 다차(별장)을 대대적으로 보급하면서 여름휴가때마다 텃밭을 가꿀수 있도록 한 결과 다차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소련의 총 농업생산량의 1/4에 달할 지경이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좋은성과를 올린경우가 있기는 한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집단농장이 대표적인 예다.(더 자세한건 김병화 항목 참조)


4. 말로

결국, 이 집단농장 계획은 여러가지 이유로 처참한 결말을 맞았다.

  • 아무리 일해도 농민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니 결국 대충 대충 농사를 짓게 되어서, 생산성이 극단적으로 떨어졌지만, 공산주의 국가는 자작농을 지주로 보고 부정했기 때문에 이념에 발목을 붙들려서 집단농장을 해체할 수 없었다. 정책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잘못된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하는 이념적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다.

  • 중앙의 정책 실패. 인류 역사의 신묘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던 소련, 중국의 지도부는 전부 다 얄팍한 유사과학에 속아넘어가거나 권위적인 최고 지도자의 사소한 실수를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처참한 정책 실패를 겪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유사농학자 트로핌 리센코의 말도 안되는 농학 이론을 도입했다가 농사를 대차게 말아먹어 각지에서 폭동이 발생했고, 결국 그 당시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까지 그 여파로 권력을 잃었다.

    중국에서도 대약진 운동을 펼치면서 리센코 식의 엉터리 이론을 도입해 농지에 작물을 빽빽하게 심는 밀식 농법을 추진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겪었고, 거기에 마오쩌둥이 시전한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스킬까지 겹치는 바람에 소련을 능가하는 대재앙급 기근으로 백만~천만 단위의 사람들이 굶어죽는 헬게이트를 열었다.

  • 이들 국가에서는 집단농장을 정치범 수용소로도 활용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수많은 지식인들이 '하방'이라는 이름 아래 시골 집단농장들로 강제 이주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때문에 집단농장 근로자들의 노예화는 점점 더 심각해졌으며, 쓸데 없이 많은 인구가 집단농장에 몰려서 일손이 남아도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 대학에는 조별과제라는 것을 시행하여 집단농장의 폐해를 교육한다.
  • 여성가족부가 제시한 게임 평가계획안에 아무 항목도 위배되지 않는다